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현실을 직시하라, 꿈은 그 다음이다

ㆍ현실을 직시하라, 꿈은 그 다음이다

요즘 <추적자>라는 드라마가 대세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던 평범한 경찰관의 삶이 대자본과 권력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는 설정. 부, 권력, 법의 힘이 가진 파괴력과 동시에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꿈을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제대로’ 불편하게 한다. 속여서라도, 훔쳐서라도, 다른 이를 짓밟고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는 자들로 득실거리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세계. 자신의 가난함을 증오하며 부와 권력을 쥔 ‘괴물’ 서회장처럼 되기 위해 점차 그 괴물을 닮아가는 강동윤 같은 인물은 꿈꾸는 일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다 문득,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 ‘꿈꿀 수 있는 세상’이라는 희망찬 말들 속에는, 어쩌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강동윤 같은 괴물이 되어도 좋다는 암묵적 전제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섬뜩해진다.

우리는 ‘꿈’이란 말에 굉장히 열광한다. 베스트셀러마다 꿈을 꾸라고 강요하더니, 심지어 한 대선 후보의 선거포스터에까지 꿈이 등장한다. 너와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작 10대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현실의 팍팍함에 직면한 20대 청년들에게 꿈은 그야말로 꿈이다. 기성세대들? 그들은 꿈꾸기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꿈을 엎은 지 오래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같은 소리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공공복지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복지만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유토피아에서는 개인적인 일이 아예 없고 모든 사람이 공공사업을 열심히 추구합니다. 유토피아나 우리나라나 양쪽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부유하게 된다고 해도 각자가 자신의 식량을 준비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남들보다는 자기 자신부터 돌보아야 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빈민도 없고 걸인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소유하는 바가 없지만 모든 사람이 부자인 것입니다.”(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1478~1535)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을 가진 가상의 섬, ‘유토피아’를 그린다. 모어는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헨리 8세에 반대해 반역죄로 처형됐다. 당시 영국에는 막대한 부를 향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굶어죽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거리는 빈자와 걸인으로 넘쳐났다. 국가는 사람들을 전쟁도구쯤으로 여겼고, 부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반면, 음식을 훔쳤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모어는 이런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Utopia)’을 꿈꿨다. 정확히 말하면, 전혀 다른 지평에서 현실을 투시했다. <유토피아>는 이상세계라기보다는 일그러진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던 셈이다. 역설적이다. 현실에 철저하게 절망한 자만이 현실 너머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은.

꿈을 꾸는 일, 중요하다. 그러나 꿈을 꾸는 건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 게 아니다. 잠드는 게 아니다. 잠들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자만이 꿈꿀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꿈으로 도피하려 하는 자, 무턱대고 꿈꾸기만을 강요하는 자, 꿈은 이루어진다는 꿈같은 소리에 도취하는 자들이야말로 우리의 꿈을 방해하는 자들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16세기 영국, 모어의 눈으로 본 악덕의 세계와 얼마나 다를까?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인들의 눈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부자를 찬양하고, 좋은 옷이 자신의 자존감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며,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돈의 맛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대는, 악몽 속의 공간이다. 그 악몽에서 깨어난 자들만이 진정으로 꿈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고 있다. 또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댈 것이다. 이 사람 한번 믿고 다시 꿈꿔달라고. 이 사람이 유토피아로 당신들을 안내하겠노라고.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환상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없음을. 꿈꾸라는 달콤한 말들이 가린 현실과 직면할 때 비로소 다르게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청소년 인문서당]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